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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고조선의 역사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by 캐쉰 202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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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편에서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고조선 수도의 정확한 위치를 비정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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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사료에서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1-1.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의 평양성

1-2.황하문명과는 괘를 달리하는 요하문명의 청동기 문화

1-3.단군 조선의 두번째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의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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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사료에서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삼국유사에는 고조선의 도읍지에 대한 두 가지 기록이 있습니다.

 

위서 전에 이르기를 지나간 2천 년 전에 단군왕검 이 있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고 나라를 세워 이름을 조선이라고 하니 중국의 요와 같은 시대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위서에는 단군조선의 도읍지가 아사달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또한 고기에 이르기를 단군왕검은 요가 왕위에 오른 지 50년인 경인년에 평양성에 도읍하고 비로소 조선이라 불렀다. 또 도읍을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는데 그곳을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금미달이라고도 한다. 나라를 다스리기 1천 5백년이 지나, 주나라 무왕이 왕위에 오른 기묘년에 기자를 조선에 봉하니, 단군은 곧 장단경으로 옮겼다가 뒤에 아사달로 돌아와 은거하다가 산신이 되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즉,고기에는 단군조선의 도읍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여 평양=백악산 아사달(궁홀산, 금미달=장단경=아사달 순으로 옮긴 것으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위서에서는 도읍지를 아사달이라고 하고, 고기에서는 첫 도읍지를 평양성이라고 한 것을 들어, 아사달과 평양성을 동일한 곳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지만 위서가 아사달을, 고기가 평양성을 첫 도읍지로 각각 기록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이 지역이 동일한 지역을 가리키고 있다고 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왜냐하면, 편찬자가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위서는 단군조선의 도읍지로 아사달만 거론하고 있는데 반해, 고기는 평양성=백악산 ,아사달=장단경=아사달을 거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위서보다는 고기가 보다 상세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위서의 편찬자는 어느 시점에서의 정보를 근거로 도읍지를 아사달로 알고 있었다고 보아야 합니다.즉,전체를 모르고 부분적인 사실만 파악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기에서는 별칭이 있는 경우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백악산 아사달은 궁홀산이라고도 하고 금미달이라고도 한다고 설명을 덧붙이고 있는데 평양성이 아사달이라고도 불렸다면 이러한 설명을 덧붙였을 것라는 것입니다.

 

1-1.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의 평양성

 

평양이란 '넓고 평평한 땅'이라는 뜻으로 이러한 지형 을 가진 곳이라면 얼마든지 평양(포트)이나 양평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고려시대만 해도 지명이 어느 정도 굳어져서 고유명사화 되었을 것입니다.일연이 이러한 지명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었던지, 아니면 훗날 조선의 사대부들이 그러한 인식이 없었던건지는 모르겠지만, 고대의 평양을 자신이 알고 있는 평양으로 한정해서 생각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평양이라고하면 북한의 평양만을 떠올리기 때문입니다) 일연 역시 단군조선의 첫 도읍지를 고려 당시의 서경,즉 평양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였고 고조선의 수도가 평양이라 주장한 이후 조선에 이르기까지 단군조선의 도읍지는 현재의 평양으로 받아 들여지고 일제와 강단 사학자들은 이 주장을 앵무새처럼 떠들고 있다는 것입니다.당시 일연이 주장한 서경이라 불리던 평양과 고조선과 고구려의 평양은 같은 지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열하일기의 박지원은 "평양은 대동강 부근에 있는 것만은 아니다.당서에는 봉황성을 왕검성이라 하기도 한다.당서 지리지에는 봉황성을 평양성이라 하기도 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봉황성은 요녕성에 고구려 산성이 있던 곳이기도 합니다.그런데 조선의 선비들은 대동강 부근의 평양만 평양인 줄 알고 한사군을 압록강 안쪽으로 몰아넣고 패수를 한반도에서 찾고 있다"라고 한탄했는데 21세기를 살아가는 현재 강단 사학계의 모습이기도 하여 씁쓸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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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황하문명과는 괘를 달리하는 요하문명의 청동기 문화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고고학적 근거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1만 년전에, 바이칼호 부근에서 신석기문명을 가지고 남하한 북방계 인종은 만주, 한반도를 거쳐 일본열도에까지 흘러갔다고 합니다.이들은 요하문명라는 독특한 정체성을 지닌 문명을 만들었고, 중국의 황하문명과 장강문명을 이룬 남방계와는 차별화 된 정체성을 지닌 문명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특히 서쪽이 사막이나 산맥으로 가로막힌, 황하문명이나 장강문명보다, 요하문명을 이룬 이들은 앞선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수한 청동기 문명를 바탕으로 건국된 나라가 바로 단군조선이라는 것입니다.(결코 중국으로부터 청동기 문명을 받아 들인 후진적인 문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요하문명이 중국보다 먼저 청동기문명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 지역에서 고대국가가 먼저 출현하는 것이 더욱 상식에 부합한다는 것입니다.문명이란 중심지에서 주변으로 흘러가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며 이러한 상식으로 볼 때 단군조선과 같이 당시로서는 강력한 고대국가가 요하문명의 중심지에서 멀리 떨어진 한반도 서북부에서 발생하였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단국대학교 윤내현 교수의 경우 대동강 유역의 평양을 도읍지로 해서 단군조선을 건국한 세력이 힘을 키워 만주에서 요서까지 영토를 넓히면서, 도읍지를 평양에서 요서로 옮겼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체적인 상황을 놓고 볼 때, 홍산문화 유적 부근(요서)에서 고조선이 발생하여 한반도에까지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는 것이 더욱 상식에 부합하는 견해라고 판단 됩니다.그렇다면 단군조선의 첫 도읍지인 평양성은 홍산문화 유적의 중심지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단군조선은 첫 도읍지를 평양성에 두었다가 백악산 아사달로 옮겼다는 구절에서 고조선의 첫 수도 평양성은 홍산문화 유적 부근인 요하지역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1-3.단군 조선의 두번째 도읍지 백악산 아사달의 위치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하북성 창려현

 

낙랑군 조선현으로 한서 지리지에 따르면 낙랑군에는 25개현이 있었는데, 그 수현이 조선현이라는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진, 한 당시의 해안선을 고려하면 현, 창려로 비정되는 지역은 해수에 잠겨있어야 함으로, 당시 해안선을 고려하면 창려는 훨씬 내륙으로 이동되어야 합니다. 후한의 학자인 응소는 조선현을 주나라 무왕이 기자를 봉했던 곳이라고 설명하였는데 진서 지리지에도 “조선현은 주나라가 기자를 봉한 땅이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즉, 기자조선의 도읍지가 낙랑군의 수현인 조선현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서기전 195년경에 연나라의 위만은 기자조선으로 망명한 후 정변을 일으켜 기자조선을 멸망시키고 위만조선을 세웠습니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②

 

위만조선의 도읍지는 왕험성 혹은 왕검성이라고도 한다.왕험성은 기자조선의 도읍지와 같으므로 낙랑군 조선현에 위치하였을 것입니다.응소는 요동군 험독현에 대해 "조선왕 위만의 도읍지다. 물이 험한 것에 의지하므로 험독 이라고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사기의 주석에서 서광은 험독현이 창려에 있다고 했다. 위만조선의 도읍지가 하북성 창려현에 있었다고 본 것으로 창려현에는 갈석산이 있으므로 위만조선의 왕험성은 갈석산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을 것인데 지금의 요서지역으로 윤내현 교수는 북대하에서 발굴된 고대의 궁궐터를 왕험성의 유적으로 보고 있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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