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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45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의 정체-그는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②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의 정체-그는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①편에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의 정체-그는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②편에서는 위만조선의 위만의 정체에 대해서 좀 더 상세하게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더보기 목차 1.위만은 중국인(연인)이었을까?_중국식 성을 쓰지 않았다 1-1.위만은 조선인이었을까?_후조선 준왕의 대우 1-2.중국인이라 주장하는 근거들 1-3.위만조선의 마지막왕 우거왕과 멸망 그리고 부흥운동 1-4.만조선은 철기 시대 2.함께 읽으면 좋은글 1.위만은 중국인(연인)이었을까?_중국식 성을 쓰지 않았다 위만에게는 원래 중국식 성이 없었다는 것인데 사기나 한서의 조선 열전에서는 그를 조선왕 만이라고 했지 성을 쓰지 않았습니다.후한서나 삼국지에서는 만을 위만.. 2024. 2. 22.
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의 정체-그는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① ①고조선의 마지막 왕조 만조선 위만은 중국인이 아닌 조선인이었다! 한민족의 고대국가를 형성한 고조선은 단군조선, 후조선, 만조선이라는 세 왕조가 있었는데, 이를 삼조선이라고도 합니다. 기원전 15세기경 단군조선은 내부적 모순의 축적으로 약화 몰락하고, 후조선이 성립하는데 후조선은 단군조선 시기의 영토였던 부여, 구려, 진국 등이 분리 독립해 나가 영토가 축소됐지만, 왕조 성립 이후 신속히 내부 체제를 정비하고, 의무려산맥 서쪽지역(요서지역)으로 광범히 진출해 난하 중류 일대까지 영토를 확장했지만 연나라 소왕 때 장수 진개의 고조선 침략으로 요하 서쪽 지역 2000여리의 땅을 연나라에 빼앗긴 후 나라가 약화됩니다. 더보기 목차 1.위만조선의 성립 1-1.위만이 다스린 변방 100리는 패수(대릉하) 1-2... 2024. 2. 21.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장군이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한 고찰 ⑥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장군이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한 고찰 ⑤편에서는 고려시대엔 압록강이 2개가 있었고 그걸 고려사에선 ‘鴨江’과 ‘鴨綠江’으로 중국 25사에선 ‘鴨淥江’과 ‘鴨綠江’으로 구분해서 기록했음을 확인했으며 강동 6주와 관련이 있는 동시에 고려 국경이었던 곳은 ‘鴨江’ 혹은 ‘鴨淥江’이었으며 그 강은 지금의 요하를 가리킨다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또한 강동 6주 중에서 가장 북쪽에 있었던 귀주(龜州)는 1233년 고려 역적 홍복원(洪福源)에 의해 몽골의 심양로(瀋陽路)에 편입됐고 나머지 5개 주는 1270년 고려 역적 최탄(崔坦) 등에 의해 몽골의 동녕로(東寧路)에 편입된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를 통해 강동 6주가 요령성 요양시 및 심양시 주변에 있었음을 확인했는데 고려거란전쟁에.. 2024. 2. 16.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장군이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한 고찰 ⑤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장군이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한 고찰 ④편에서는 고려시대엔 맑은 압록강인 鴨淥江과 푸른 압록강인 鴨綠江이 있었고 그 중 고려의 국경이 되었던 압록강이자 강동 6주와 관련이 있는 압록강은 맑은 압록강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2개의 압록강을 고려사에선 각각 압강(鴨江)과 압록강(鴨綠江)으로 구분하고 있었으며이 맑은 압록강의 정체는 오늘날의 요하라는 사실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서희 장군의 고려 강동 6주의 구체적인 위치를 찾기 위해 그 중 첫 번째로 강감찬(姜邯贊) 장군이 소배압(蕭排押)의 거란군을 크게 섬멸한 귀주대첩(龜州大捷)이 있었던 귀주의 위치를 찾아봤는데 그 귀주의 위치는 평안북도 구성시가 아니라 요령성 철령시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확인했기 때문에 이젠 나머.. 2024. 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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