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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고조선의 역사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①

by 캐쉰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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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단군조선 혹은 고조선의 수도라고 알려진 왕험성(왕검성)의 위치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현재 왕험성의 위치는 북한에 위치한 평양이었다는 것이 20세기 근대역사학이 정립된 이래 철벽처럼 군림해온 학설 중 하나로 정확히는 대동강 북쪽 평양 일대에 있다가 한 제국이 기원전 108년 고조선을 멸망시킨 뒤 강 남쪽으로 거점(낙랑군 치소)을 옮겼다는 식민지 시대 일본 학자들의 추정이 100여년간 건재해왔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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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1-1.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도 인정한 고조선 수도 위치

1-2.고고학적으로 왕검성 대동강북안설 폐기 주장

1-3.한서리지리 속 왕검성 위치

1-4.한국 강단사학계의 주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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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학자들이 말하는 고조선의 수도 위치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①

1960년대 이후 남북한 학계에서는 요동이 중심지였다가 기원전 3세기 연나라 장군 진개의 침공에 따라 평양으로 이동했다는 설도 나왔지만, 최종 입지가 평양이란 결론은 굳건했습니다.그런데 왕험성(왕검성)은 평양에 애초 없었고 고조선 종말까지 요동에 있었다는 학설이 처음 공론화(2017년 제41회 전국고고학대회)되었는데 사마천의 사기 ‘조선열전’과 5세기 중국지리서 수경주의 왕험(검)성 고증 기록에 기대어 고조선을 연구해온 문헌사학자들은 당혹감에 빠졌지만 반면, 왕검성 요동설을 주장해온 재야 학자들은 “강단사학이 양심선언을 했다”며 반색하기도 합니다.그런데 지금의 평양이 위만 조선의 수도 왕험(검)성이라면 고고학적으로 위만조선의 유적, 유물이 나와야 하는 데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동북공정을 통해 고조선은 물론이고 고구려,발해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고 있는 중국조차도 왕험성은 만주에 있었다고 보는 입장으로 중국은 요녕성 안산(案山)시 산하의 ‘태안(台安)현 손성자(孫城子)’가 위만조선의 왕험성 자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1-1.동북공정을 주장하는 중국 학자들도 인정한 고조선 수도 위치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①

 

북한 지역까지 자국 영내라고 우기는 동북공정 학자들도 왕험성 자리는 요녕성 태안현이라는데, 한국의 강단 사학자들만 “아닙니다. 왕검성 자리는 지금의 평양이고, 북한은 모두 중국땅입니다.”라고 우기는 블랙 코미디가 전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일본 도쿄대에서 일제강점기 평양 출토 낙랑 유물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정인성 영남대 교수는 도쿄대 소장품 분석 성과와 요동·요서의 고조선계 청동기, 토기에 대한 현장 조사를 토대로 논문 ‘고고학으로 본 위만조선 왕검성과 낙랑’을 발표했는데 요지는 ‘한나라가 요동 왕검성을 무너뜨린 뒤 평양에 낙랑군 치소를 따로 설치했을 공산이 크다’는 것으로 기존 왕검성 대동강 북안설과 요동요서를 포함한 고조선 강역 논란 등을 검토하고, 최신 고고자료를 종합한 결과 평양성은 왕검성이 들어설 수 없는 공간”이라고 단정했습니다. 근대 발굴이 시작된 이래 100여년이 지났는데도, 지금껏 평양에서 고고학적 물증이 안 나왔다는 게 근거로 “1905년 경의선 부설로 평양역 부근을 굴착한 이래 대성산성, 청암리토성 등 대동강 북안의 조사가 진행됐으나, 왕성으로 볼 만한 어떤 유적, 유물도 확보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잣대는 왕성 성곽의 자취인데 고조선과 비슷한 시기 한나라에 복속된 남월국(베트남)도 왕성 성곽이 중국 문물들과 함께 발견된다는 점에서 고조선도 성곽 중심으로 실체를 검증해야 한다는 견해입니다.

 

1-2.고고학적으로 왕검성 대동강북안설 폐기 주장

 

정 교수는 나아가, 위만조선이 연나라 제나라 망명자들의 나라이므로 연, 제의 유물문화가 확인되는 요동 유적 일대에서 성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고고학적 견지에서, ‘왕검성 대동강북안설’은 폐기해야 하며, 왕검성은 요동에 존속하다 한나라 군현 설치 뒤 중심지가 대동강변으로 이전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입니다.한나라가 서쪽에서 바다 건너 왕검성을 공격했다는 사기 기록과 고구려인이 왕검성을 평양성 일대로 묘사한 전언을 담은 수경주 내용을 정 교수의 설이 깡그리 부정하자 윤선태 동국대 교수는 “청암리 토성 등 발굴하지 않은 평양 성곽들이 남아 있는데, 물증이 없다고 단정하는 건 거친 해석”이라며 “요동에 왕검성이 속했다면, 역사적으로 확증된 한나라 요동·요서군 위치도 수정해야 하는데, 근거를 댈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으며 오영찬 이화여대 교수도 대회 토론문에서 “요동 왕검성을 함락시켰다면, 왜 수천리 떨어진 평양에 굳이 낙랑군을 두었는지 납득할 만한 설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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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한서리지리 속 왕검성 위치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①

 

 

국내 기존 사학자들의 이런 입장과는 달리 중국학자들이 왕험성을 요녕성 태안읍이라고 보는 것은 최소한의 학자적 자존심 때문으로 한사군의 위치에 대한 1차 사료인 한서(漢書) 지리지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서 지리지는 낙랑군 조선현과 요동군 험독현을 각각 다른 곳으로 보고 있는데, 요동군 험독현을 위만조선의 도읍지라고 보고 있습니다. 후한(後漢:서기 25~220) 때인 서기 181년에 태산(泰山)태수를 역임한 응소(應劭)는 요동군 험독현이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라고 설명했으며 위만조선의 도읍지 자리에 세운 왕험성이 ‘요동군’ 소속이므로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이 동북공정 추진 학자들의 최소한의 자존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이 한반도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중국학자들은 중국역사지도집 이론서인 석문회편(釋文滙編)에서 “요동군 험독현만 조선반도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지금의 ‘요녕성 안산시 산하 태안현 손성자(孫城子)’를 위만조선의 도읍지에 세운 요동군 험독현 자리라고 비정한 것입니다.

 

한나라 때의 요동군은 지금의 요동보다 수백 km 서쪽의 하북성 일대를 뜻하지만 지금의 요동이라고 쳐도 위만조선의 수도 자리에 세운 험독현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다는 것으로 왕험성=요동은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중국학자들조차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한국 강단사학계는 위만조선의 도읍지=낙랑군=평양일대라고 지속적으로 우기고 있는데 한국교원대학교의 송모 교수는, “평양 부근에 고조선 왕검성이 있었고, 그 뒤에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왕검성은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가 평양 지역인만큼 역시 평양 일대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순리다( 고조선의 위치와 중심지 문제에 대한 고찰,2010)에서 말했는데 합리적,순리와 같은 비학문적 용어를 남발하면서 평양에 왕검성이 있었다고 우기고 있으며 중국 동북공정에서도 왕검성은 요녕성 태안읍에 있었다고 말하는데, 전문가라는 사람이 아무런 근거 사료도 없이 없이 평양이라고 우기는 중이며 고고학대회에서 토론자로 나오기로 했다가 나오지 않았다는 이화여대 오모 교수도 마찬가지로 “위만조선이 멸망할 당시 수도는 왕검성임이 분명하며, 그 자리에 낙랑군 조선현이 설치되었으므로, 평양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낙랑군 관련 유적으로 통해 볼 때, 왕검성=낙랑군 조선현=평양이 자연스럽게 인정된다는 것이다.

 

1-4.한국 강단사학계의 주장들

 

역사학자들과 사료가 비정한 단군조선의 수도 위치-고조선의 마지막 수도 왕험(검)성은 북한 평양이 아닌 중국 장단경이다 ①

 

 

바로 이러한 입론이 평양설이나 이동설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오○○,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 연구의 새 동향, 서경문화사, 2007)에서 주장하기도 합니다.또한 오모 교수는 낙랑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앞의 문장은 1차 사료적 근거가 전혀 없는데 위 문장을 1차사료에 근거해서 바꾸면 괄호 안의 내용처럼 되야 합니다. “위만조선이 멸망할 당시 수도는 왕검성임이 분명하며, 그 자리에 낙랑군 조선현(요동군 험독현)이 설치되었으므로, 평양 일대에서 발굴 조사된 낙랑군 관련 유적으로 통해 볼 때, 왕검성=낙랑군 조선현=평양이 자연스럽게 인정(부인)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입론이 평양설이나 이동설의 근간(을 모두 무너뜨리는 근거가)이 되는 것이다.” 중국의 사료는 물론 동북공정, 그리고 현재 평양지역의 고고학유적, 유물 발굴결과도 왕검성은 평양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말하고 있지만 한국의 강단사학계는 1차 사료를 보지 않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료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왕험성은 요동’에 있었지만 낙랑군은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절충설에 대해서 검토해보면 낙랑군이 지금의 하북성 일대에 있었다는 중국의 고대 사료는 무수히 많지만 그러나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었다는 문헌 사료는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한서 지리지의 요동군 험독현에 대해서 중국 고대 역사학자인 신찬(臣瓚)은 “왕험성(요동군 험독현)은 낙랑군 패수의 동쪽에 있다〔王險城在樂浪郡浿水之東〕”라고 말했고, 당나라 때 주석가인 안사고(顔師古)는 “신찬의 설이 맞다”라고 동의했습니다. 낙랑군은 고대 요동에 있었던 험독현보다 서쪽에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왕험성이 지금의 요동에 있었다면 낙랑군은 최소한 그 서쪽 만주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왕험성이 요동에 있는데, 낙랑군이 지금의 평양에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이 중국 고대 사료가 말하는 왕험성과 낙랑군의 위치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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