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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고려의 역사

고려거란전쟁에서 서희 장군이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한 고찰 ①

by 캐쉰 2024. 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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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빠르고 간결한 전개와 수준 높은 전투신 그리고 그간 사극에서 보여주지 못했던 거란어 대사까지 나와서 몰입도를 높여주며 상당한 인기를 끌었지만 양규 장군의 죽음이후 역사왜곡으로까지 이어지는 현종에 대한 묘사 때문에 점점 그 내용이 산으로 올라가며 안타까움을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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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전략적 요충지 강동 6주

1-1.고려 북계는 요양, 심양과 접경하고 있었다

1-2.철령위의 실제위치

1-3.일제 식민사관에 갇혀버린 고려의 옛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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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전략적 요충지 강동 6주

 

국사 교과서에 위치한 강동 6주 위치

 

고려와 요나라 사이의 전쟁은 총 3차례 있었는데 1차 여요전쟁은 서기 993년에 있었습니다. 당시 요나라가 전쟁을 일으킨 이유는 송나라와의 전쟁을 앞두고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함이었는데 이 때 서희(徐熙)의 담판으로 고려는 강동 6주를 획득하는 성과를 얻었습니다. 1004년에 요나라가 송나라를 공격해 전연의 맹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이 덕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후 요나라는 고려에 할양했던 강동 6주가 전략적 요충지인 것을 뒤늦게 깨달았고 이 때문에 강동 6주 반환 및 고려와 요나라 양국 간 관계 재확인을 위해 1010년에 2차 여요전쟁을 일으켰고 1018년에 3차 여요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2차와 3차 여요전쟁을 다루고 있는데 고려거란전쟁에서는 다루지 않은 서희가 담판외교로 획득한 강동 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하여 사서의 기록을 토대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강동 6주는 압록강 동쪽에 있는 6개 고을이란 의미를 담고 있으며 현행 국사 교과서엔 강동 6주의 위치를 위의 지도대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1-1.고려 북계는 요양, 심양과 접경하고 있었다

 

강동 6주의 위치를 언급하기 전에 먼저 대전제 하나를 깨고 시작해야 하는데 국사 교과서에는 고려의 영토가 한반도도 다 차지하지 못한 것으로 묘사되어 있지만 과연 그러한지부터 살펴봐야 합니다.1388년 명나라의 태조 주원장(朱元璋)이 갑자기 원나라 시절 영토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방적으로 철령위(鐵嶺衛) 설치를 통보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국사 교과서에는 철령위의 위치를 강원도 회양군의 철령 인근에 있었던 것으로 표기했는데 정작 철령위를 설치한 주체인 명나라의 기록을 보면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명사 권 41 지리지 2에 철령위의 기록이 등장하는데 그 기록을 실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철령위는 홍무(洪武) 21년(1388년) 3월에 옛 철령성에 설치했으나
26년(1393년) 4월에 옛 은주(嚚州)의 땅으로 옮겼다. 곧 지금의 치소이다.
서쪽에는 요하가 있으며 남쪽으로 범하(泛河)가 있고 또 남쪽에 소청하(小清河)가 있는데
모두 요하로 흘러 들어간다. 또 남쪽에 의로성(懿路城)이 있는데 홍무 29년에 의로천호(懿路千戶)를 이곳에 두었다.
또 범하성(范河城)이 위(衛)의 남쪽에 있으며 또 범하성(泛河城)이라고도 한다.
정통(正統) 4년(1439년)에 범하천호(泛河千戶)를 이곳에 두었다. 동남쪽에 봉집현(奉集縣)이 있는데
곧 옛 철령성이며 고려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홍무 초기에 현을 설치했으나 폐지했다.
또 함평부(鹹平府)가 있는데 원나라 때의 직예요동행성(直隸遼東行省)이다.
지정(至正) 2년(1342년)에 항복하여 현이 되었으며 홍무 초에 폐지하였고 남쪽으로 도사(都司)와의 거리는 240리이다.

/명사 권 41 지리지 2

 

 

 

1388년 철령위는 철령성이란 곳에 설치했는데 그 철령성은 봉집현이란 곳에 있었고 그곳이 당시 고려와 명나라 사이의 국경이었다는 뜻입니다. 그럼 봉집현의 위치를 알면 대략적으로 고려와 명나라 양국 간 국경이 어디서 형성됐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중국고금지명대사전에서 봉집현의 기록을 찾으면 이렇습니다.

 

봉집현은 당나라 때 발해가 설치했으나 원나라 때 폐지되었고 명나라에서는 봉집보(奉集堡)라 했다. 오늘날 요령성 심양현 동남쪽 45리에 있다.
奉集縣唐時渤海置元廢明爲奉集堡在今遼寧省瀋陽縣東南四十五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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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철령위의 실제위치

 

 

봉집현은 요령성의 성청이 있는 심양시 동남쪽 45리 지점에 있었다는 뜻으로 명나라 때 이곳은 봉집보란 이름으로 바뀌는데 실제로 심양시 소가둔(蘇家屯)구에 그 지명이 남아 있다고 합니다. 심양시 동남쪽 직선거리 28.5km, 본계시 서북쪽 직선거리 13.2km 지점으로 바로 이 부근에서 고려와 명나라 양국 간의 국경이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건 다른 나라 기록도 아닌 철령위를 설치한 주체인 명나라 측에서 직접 남긴 기록이기도 합니다. 철령위가 바로 저곳에 있었기 때문에 최영 장군이 요동 정벌을 계획했던 것으로 만일 철령위가 국사 교과서 속 지도대로 표기된 곳에 있었다면 최영 장군이 요동 정벌을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럼 고려의 영토가 압록강 너머 요령성까지 이어졌다는 사실이 우리나라 사서에서도 교차 검증이 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다행히도 교차 검증이 된다는 것입니다.

 

고려사 권 135 열전 48에 기록된 우왕(禑王) 9년(서기 1383년)의 기록을 보면 이성계가 우왕에게 국경 수비에 대해 건의한 내용이 있는데 해당 기록은 조선왕조실록 태조 총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두 사서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내용은

 

북계(北界)는 여진(女眞), 달달(達達), 요심(遼瀋) 등의 땅과 맞붙어 있어 실로 국가의 요충지이니,
비록 아무 일이 없을 때라도 반드시 군량을 비축해 두고 군사를 양성해 불의의 사변에 대비해야 합니다.
北界與女眞達達遼瀋之境相連實爲國家要害之地雖於無事之時必當儲糧養兵以備不虞)

 

1383년 이성계는 고려의 북계가 요령성 요양, 심양과 맞붙어 있다고 기록했는데 국사 교과서 속 북계의 북쪽 끝 지역인 신의주시와 심양시 간 직선거리는 210km로 서울에서 경북 성주군까지 거리와 비슷합니다.

 

1383년 이성계는 고려의 북계가 요령성 요양, 심양과 맞붙어 있다고 기록했는데 국사 교과서 속 북계의 북쪽 끝 지역인 신의주시와 심양시 간 직선거리는 210km로 서울에서 경북 성주군까지 거리와 비슷하다.(지도 제작 : 굿모닝충청 조하준 기자)

 

1-3.일제 식민사관에 갇혀버린 고려의 옛 영토

 

 

고려의 북계가 여진, 몽골, 요심 등과 맞붙어 있다는 내용인데 여기서 요심이란 요령성의 요양시와 심양시를 말합니다. 국사 교과서 지도대로라면 이 내용은 이상할 수밖에 없는데 심양에서 신의주까지 직선거리는 대략 210km 정도로 서울에서 경상북도 성주군까지 거리인데 이런 곳을 ‘맞붙어 있다’고 표현할 순 없을 것입니다. 즉, 고려의 북계는 요령성 요양시, 심양시와 매우 가까운 곳까지 이어져 있었고 명사 지리지에 나온 기록이 이를 보충해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당 기록은 고려 멸망 직전 상황의 기록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1392년 고려 멸망 당시까지 고려 영토는 현재의 압록강을 넘어 요령성 요양시와 심양시 인근까지 뻗어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입니다.이렇듯  “고려는 한반도도 다 차지하지 못했다”는 낡은 일제사관을 깨뜨린 후에 사서의 기록을 들여다 봐야 앞으로 살펴볼 서희의 강동6주의 진짜 위치에 대해서도 정확한 내용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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