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건국과 탄생-역사학자들이 본 고조선과 중국의 경계선 및 최대 영토 ①편에 이어 ②편에서는 고조선의 후기 영토 미등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목차
1.심백강 박사가 추정한 고조선 영토
1-1.한국 고대복식연구를 통해 추정한 고조선의 영역
1-2.한국 고대사의 두 가지 체계
1-3.삼국유사:기본 사료 체계
1-4.제왕운기:고려사 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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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백강 박사가 추정한 고조선 영토
사료 중심의 우리 고대사를 연구하는 심백강 박사는 고조선 건국 연대와 관련하여 산해경에는 ‘발해의 모퉁이에 나라가 있으니 그 이름을 조선이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산해경의 이 기록에 따르면 오늘날의 발해만 부근에 있던 고대 국가는 고조선이었습니. 산해경에서 말한 고조선의 위치와 요서에서 발굴된 하가점하층 문화의 분포 범위가 서로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요서 일대에 분포된 하가점하층 문화는 동아시아 문명의 홍산문화를 이어 4000년 전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건국한 고조선이 남긴 유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4000년 전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했다는 기록은 고고학적으로도 증명이 되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고조선의 강역과 관련해서는 “고조선의 서쪽 강역은 전국 시대 이전에는 산동성 동부 일부와 하북성 서북부, 중남부를 포괄하였지만 연나라의 전성기에 하북성 서북부와 동북부 일부를 상실하였으나 진·한 시대에 중원이 혼란한 틈을 타서 다시 회복하였으며 위만조선이 멸망하고 한 무제가 논공행상을 할 때 유공자들에게 나누어준 봉지를 보면 압록강 유역의 지명이 아니라 산동성 동부에 있는 지명들이 나타납니다. 이는 한나라 때 오늘날 산동성의 동부가 고조선 영토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유력한 증거이며, 근래 비파형 동검의 출토 상황을 살펴보면 산동성 동부, 하북성 서북부, 서남부, 만주와 한반도 일대를 망라하고 있는데 서쪽으로는 중국의 하북성 보정시 망도에서부터 동쪽으로는 한국의 전라남도 보성군과 경상남도 진주 등지에 이르기까지 실로 한반도, 요동반도, 산동반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지역에서 비파형 동검이 출토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파형 동검의 출토지는 문헌에 기록된 고조선의 강역과 일치하며 고고학적으로 고조선 영토의 범위를 뒷받침하는 유력한 증거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심백강 박사는 연구를 통해 기원전 24세기 고조선 건국이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며 고조선 영역도 만주, 한반도, 요동 및 요서 지역 일대에까지 이르렀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심백강 박사는 현재 북경시 북쪽에 있는 조하潮河는 북송 시대까지 조선하潮鮮河였으며 사기 조선열전에서 말하는 연나라와 조선의 국경이며 나중에 한나라와 조선의 국경이기도 한 패수浿水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고조선의 국경이 북경 인근에 있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1-1.한국 고대복식연구를 통해 추정한 고조선의 영역
상명대 박선희 교수는 한국 고대복식연구를 통해 고조선의 영역을 추정했는데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 출토된 복식 자료 가운데 출토량이 비교적 풍부한 가락바퀴, 나뭇잎과 원형모양의 장식, 긴 고리모양의 허리띠 장식, 갑편 등이 그 문양이나 양식에서 공통성을 지니면서도 중국이나 북방 지역의 것과 많은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고찰하였는데 복식 재료도 유사하다는 점을 밝히고 같은 복식을 생산하고 사용했던 사람들이 공통의 귀속 의식을 가진 하나의 국가에 속한 주민들이라 보았습니다.
앞서 국내 사학계에서는 고조선을 보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고조선을 보는 사학계의 입장은 고조선 역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고조선의 강역과 고조선의 연대를 보는 시각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고조선 연대에 대해서는 고고학적 유물,유적 등을 통해 삼국유사 등에서 기록한 바대로 기원전 24세기경으로 보는 견해와 기원전 4~5세기경에 성립한 국가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으며 고조선의 강역에 대해서는 시대에 따라 변천했겠으나 고조선이 대동강의 유역을 중심으로 한반도 북부에 존재하였다고 보는 입장과 한반도, 만주, 요동 및 요서를 포괄하고 있었다는 입장이 명확히 갈라진다는 것입니다.이러한 견해 차이는 한사군까지 이어져서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서도 한반도 존재설, 요서 지역 존재설 등으로 나뉠 수 밖에 없게 합니다. 윤내현 교수는 고대문헌에 보이는 한국고대사의 두 가지 체계(고조선 연구 제1호, 2008)라는 논문을 통해 이러한 국내 사학계에 고조선에 대한 두 가지 입장이 나타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2.한국 고대사의 두 가지 체계
윤내현 교수는 삼국유사 고조선조에는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의 중심부에 위치하지 않았고 그 서부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달리 제왕운기에는 기자조선이 단군조선의 뒤를 이어 그 중심부에 위치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라고 했습니다. 즉, 삼국유사와 제왕운기에 나타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그 결과, 한국과 중국 문헌에는 한국 고대사에 대해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체계가 존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국유사에 따라 고조선(단군조선) → 열국 시대로 이어지는 체계와 제왕운기에 따라 고조선(단군조선, 진조선) → 기자조선(후조선, 준왕) → 위만조선(위만, 우거) → 한사군 → 열국 시대로 이어지는 체계가 그것입니다. 한국 고대사에 대해 완전히 다른 두 역사 체계가 나뉘게 되었으니 둘 중 하나는 잘못된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이 두 가지 체계를 좀 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3.삼국유사:기본 사료 체계
이 체계는 주로 중국 문헌에서 확인되며 삼국유사 고조선조 내용과도 같습니다. 윤내현 교수는 “삼국유사와 중국 기록에 나타난 한국 고대사 체계는 고조선이 한반도와 요동·요서 지역을 활동 무대로하여 계속 존속하다가 중앙의 통치력이 약화되자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열국 시대가 출현한 것으로 그리고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 등은 고조선의 중심부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아니라 고조선의 서부 변경邊境 지대, 즉 지금의 요서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로서 이들은 한국사의 주류가 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윤내현 교수는 한서,진서 등에서 기자조선이 지금의 하북성 창려현 난하유역의 갈석산 부근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점 등을 논거로 들었습니다.
1-4.제왕운기:고려사 체계
오늘날 통용되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제왕운기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삼국유사-기본 사료 체계와는 전혀 다른 내용의 역사가 전개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주류 사학계가 받아들이는 한국 고대사 체계는 단군조선 → 준왕 → 위만조선(위만, 우거) → 한사군 → 열국 시대 체계인데 제왕운기 체계에서 기자조선의 존재만 부인하고 그 자리에 준왕을 대신 등장시켰을 뿐입니다.
윤내현 교수는 중국 문헌에 따르면 삼국유사-기본 사료 체계가 명확한데도 불구하고 제왕운기와 고려사를 통해 기자조선이 한국 고대사 체계에 들어오면서 한국 고대사에 왜곡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즉 한민족 국가인 고조선에 상나라 제후였던 기자가 상이 주에 멸망하자 고조선에 들어와 단군조선을 이어받게 된 것이며 또 위만이 기자의 후손인 준왕의 정권을 빼앗아 위만조선을 세우고 한나라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설치한데 따라 기자조선-위만조선-한사군이 한국 고대사의 주류에 들어오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 역사 체계에서는 고조선(전조선)·기자조선(후조선)·위만조선을 삼조선이라 부르고 지금의 평양이 도읍지였고 한사군도 같은 지역에 있었으며 열국 시대가 그 뒤를 이었다고 주장한다는 것입니다.이렇게 한국문헌의 한국 고대사 체계가 중국 문헌의 기록과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고려 시대에 기자를 고조선의 뒤를 이은 통치자로 잘못 등장시킨 데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기자조선과 위만조선 그리고 한사군은 고조선 서부변방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으로 한국 고대사의 주류 체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조선의 연대 문제와 강역 문제는 한국 고대사의 핵심으로 현존하는 한국 및 중국 사서는 물론 한민족 활동 무대였던 중앙아시아와 유라시아 대초원의 역사 기록 등 우리 역사와 관련된 수많은 고대 사서를 엄밀하게 재해석해야 하며 동북아 일대와 유라시아 대초원 등에서 발굴되어 한민족 고대사를 유추할 수 있는 수많은 고대 유적과 유물 등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복원해 나가야 합니다. 1960년대 이후 중국의 홍산 지역에서 쏟아져 나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고 지금도 발굴이 계속되고 있는 고대 유적과 유물들은 앞으로 고조선 역사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지만 현재 중국 대륙에 있는 관계로 접근 자체가 힘든 것도 문제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 상고사를 복원하는데 있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합니다.고조선 그리고 단군 조선은 죽어버린 과거의 역사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문제이며 내일을 살아갈 우리 자손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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