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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고조선의 역사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_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②편

by 캐쉰 2024. 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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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①편 에 이어 ②편에서는 고조선과 연나라의 전쟝등을 상세히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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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연나라의 전성기

1-1.연나라의 중흥군주 소왕의 등장

1-2.진개의 조선 침략

1-3.고조선과 연나라 경계-허베이성 동남쪽 친황다오시 인근 vs 랴오닝성 첸산산맥 일대 

1-4.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은 주류학파들과 그 틈을 비집은 중국 동북공정

1-5.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는 한국학계 자체가 쓰레기 집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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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연나라의 전성기

 

중국 동북공정측 사료였던 연의 강역이 동으로 랴오둥을 넘어 한반도까지 이른다는 기록의 진위는 어찌 된 것일까?우선 춘추시대 연나라의 강역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사기 연소공 세가와 조선열전, 흉노열전 등에 나오는 연나라의 강역은 전국시대 중기~말기,즉 연나라 전성기의 기록으로

 

“연나라는 밖으로 만맥(북동쪽 동이족을 멸시한 명칭)등 여러 종족과 대항하고, 안으로는 제와 진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느라 국력이 가장 약했고, 망할 뻔 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하지만 800~900년간 사직을 보존했으니.."

 

사마천의 논평은 전국 7웅이지만 국력이 가장 약한 연나라에 대한 연민을 표현한 것이기도 합니다.BC 316년, 연왕 쾌가 재상인 자지에게 왕권을 넘겨주자 연나라는 큰 혼란에 빠졌는데,이 때를 틈타 제나라와 중산국이 손을 잡고 연나라를 쳤습니다.이때 중산국에 땅 500리와 성 10곳을 빼앗기는 수모를 겪었고(314년) 연 나라는 거의 망국에 이릅니다. 이 때 등장 한 이가 바로 연나라의 중흥군주 소왕(재위 BC 311~BC 279년)입니다.

 

1-1.연나라의 중흥군주 소왕의 등장

 

소왕은 인재를 널리 구하는 데 힘썼으며 군사전략가인 악의 (BC 406년 중산국을 멸한 위나라 악양의 후손)가 우에서, 음양오행에 해박한 추연이 제나라에서, 힘이 장사인 극신이 조나라에서 일제히 달려왔습니다.소왕은 BC 283년 무렵 진, 초, 한, 조, 위 등과 함께 제나라에 대한 복수를 감행했는데 다섯 나라 중 유일하게 연나라 군사만이 제나라 수도 임치까지 진입, 제나라의 궁묘와 종묘를 불살라 버렸습니다. 제나라 성 가운데는 3성만이 남았고 나머지는 모두 연나라에 속했습니다. 

 

1-2.진개의 조선 침략

 

사기 흉노열전을 보면 재미있는 기록이 나오는데

 

“연나라 명장 진개가 흉노에 인질로 가있으면서 그들의 신뢰를 받은 후 돌아와 군대를 이끌고 동호를 습격, 패주시켰다. 동호는 1000여리나 후퇴했다. 진개는 훗날 자객인 형가를 수행해서, 진왕(훗날 진시황)을 암살하려 했던 진무양의 할아버지이다. 연나라는 조양,양평에 이르는 장성을 쌓고~."

 

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진개는 언제적 사람인지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그 유명한 '형가의 진시황 암살 미수사건'에서 추론할 수 있습니다. 형가 사건이 일어난 것이 BC 227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형가를 수행한 진무양의 할아버지인 진개는 연나라 소왕의 전성기, 즉 BC 283~BC 279년 사이에 활약했던 장수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진개란 인물이 또 한번 등장하는,유명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조를 보면

 

"조선후 준이 감히 왕을 칭하였다. 연나라 망명인 위만이 공격하여 기자조선을 빼앗았다."

 

라는 기록인데 그런데 이 단 한 줄에 불과한 이 기록에 덧붙여 삼국지의 저자 진수(옛. AD 233~297년)는 위락이라는 역사서를 장황하게 인용합니다. 연나라의 강역 부분만 인용해보면

 

“위략에 따르면 조선왕이 왕을 칭하는 등 점점 교만해지자 연 나라가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그 땅의 서방을 공격하여 땅 이천리를 취하였다.”

/삼국지 위지 동이전 한조에서 진수가 인용한 위략에서 부분 발췌

 

사기 흉노열전과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 사서를 종합하면 연나라가 소왕 때, 즉 BC 300~BC 280년 사이 북방으로는 1000리, 동쪽으로는 2000리를 공격, 강토를 넓혔다는 얘기입니다.하지만 연 나라가 소왕 이후 4대 희(喜)왕(서기전 254년 ~ 서기전 222년)에 이르러 진나라에 멸국되었기에 고조선의 영토를 온존히 지킬 수 있었는지는 불확실합니다.일부에서는 고조선이 빼앗긴 영토를 바로 되찾지 않았을까라는 의견도 있는 것은 바로 연 나라의 내부 사정과도 관계가 있을 것 같습니다.물론 고조선과 연나라의 경계가 어디까지 였는지에 대한 연구도 진행되였습니다.

 

1-3.고조선과 연나라 경계-허베이성 동남쪽 친황다오시 인근 vs 랴오닝성 첸산산맥 일대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_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②편

 

 

 

만번한은 연나라와 고조선 두 나라의 전쟁 이후 경계가 됐는데 서쪽 영토를 잃기 전 고조선의 세력범위를 가늠해볼 수 있는 고대사의 쟁점 가운데 하나지만 정확한 위치를 놓고 학계의 견해가 엇갈립니다.과연 고조선과 연의 경계,만번한은 어디였을까?재야,강단 사학계가 고대사를 바라보는 관점은 너무나 다른데 재야 사학계에서는 사고전서로 살펴 본 연나라와 고조선의 경계에서 두 나라가 갈석산 남쪽, 현재의 베이징 서남쪽에서 마주하고 있다가 전쟁 이후 국경이 허베이성 동남쪽으로 이동했다고 추정했습니다.(심백강 민족문화연구원장) 또한 사기(史記) 흉노열전에

 

'연나라는 또한 장성을 쌓아 조양으로부터 양평까지 이르렀으며…'

 

라고 기록돼 있는데 연나라가 쌓았다는 장성의 동쪽 끝인 양평의 위치를 찾아야 합니다.당나라 때 학자 두우가 쓴 통전(通典)은 연나라가 설치한 5군 가운데 가장 동쪽에 있었던 요동군 양평현을 지금(당나라 때)의 안동부라고 했습니다.통전과 역도원의 수경주(水經注) 등을 분석해 양평이 현재 허베이성 친황다오시 루룽현 서남쪽이라고 파악했으며 랴오닝성 첸산(千山)산맥 일대를 만번한으로 추정하기도 하며(이후석 박사-고고학을 통해 본 만번한) 친황다오시에서 한반도쪽으로 상당히 물러선 위치이기도 합니다.

 

고조선과 연나라의 전쟁 이후 물질문화 경계 또한 고조선-연나라 전쟁 전후로 첸산산맥 일대의 물질문화 분포가 달라진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 고조선계 세형동검문화와 연나라 계열 물질문화의 경계는 전쟁 이전 허베이와 요서의 접경지역이었습니다.이 경계는 전쟁 이후인 기원전 3세기 즈음 첸산산맥 서쪽으로 이동합니다. 특히 이 경계 부근에서 연나라 귀족층 무덤도 발견됩니다.기본적으로 '위략' 등 관련 기록을 중시해야 하지만 서술 내용이 소략하고 그나마도 일치하지 않아 다양하게 해석될 여지가 있는데 고고학적 물질문화 경계를 찾고 문헌기록과 대비해 합리적 대안을 마련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겨집니다.고조선의 탄생은 우리 문화의 시발점이자 중국이 아닌 그 이전부터 존재했던 선진 문명의 게승자라는 점 때문입니다.문제는 한국의 주류학파가 아직도 식민사학의 강한 영향을 받고 고조선을 인정하지 않고 중국과 똑같은 주장을 한다는 점입니다. 어떤 학자가 주류학파인지, 반식민사학 성향의 비주류학파인지를 구별해볼려면, 단군조선을 인정하는지 안하는지를 물어보면 간단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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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단군조선을 인정하지 않은 주류학파들과 그 틈을 비집은 중국 동북공정

 

주류학파는 고조선 자체는 인정하지만, 그 고조선이 단군조선이었다는 주장은 인정하지 않습니다.단군 조선을 인정 하지 않고 부정한다면 고조선의 역사는 B.C 10세기에서부터 시작되지만 단군조선을 인정하면 한국의 역사는 당연하게도 5천년이 됩니다.한국의 주류사학자들은 단군조선을 부정하고 한국의 역사를 3천년으로 본다는 것입니다.중국의 동북공정이 이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주류학파가 인정하지 않는 단군 조선의 역사를 중국화시키고 있다는 것이며 한국의 기원은 중국이 되어 버린다는 것입니다.그럼에도 주류학파는 그냥 지켜볼 뿐인데 이들은 단군조선을 인정하는 순간 그동안 발표해온 자신들의 석,박사논문들이 모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물론 그들부터 쓰레기통으로 쳐박아야 하겠지만 아직까지 그들은 기득권층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단군 조선은 신화와 전설의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더불어 중국은 국내 사학자들의 단군 조선 지우기에 무임승차하여 단군 조선 뿐 아니라 부여와 고구려사를 동북공정을 통해 기존의 일사양용론의 입장에서 벗어나 중국사에 완전히 편입시키려고 하는데 단군 조선이 지워진 한국 고대사는 중국계 유민이 세운 기자 조선으로 시작하였다고 특정지으며 단군 조선을 비롯하여 부여,고구려,발해 등 한국고대사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이에 대해 중국정부는 동북공정이 역사왜곡이 아니라 순수한 학술적인 연구라고 강변하지만 실제로는 동북지역의 정치적 안정, 나아가 한반도 정세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국가 전략 차원에서 추진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단군 신화는 믿을 수 없는 신화이기 때문에 단군에 의해 건국되었다는 단군 조선의 실체를 부정하고 대신에 중국은 은나라 말기 주 나라 초기에 실존 인물이었던 기자에 의해 건국된 기자조선이 고조선의 시작이라고 강조함으로써 한국사가 시작부터 중국에 종속되었다고 왜곡하는 것입니다.또 중국계 위만이 세운 위만조선은 기자조선의 정권을 장악했지만 여전히 중국의 번속체제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결국 한의 군현체제에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동북공정은 이제 중국의 모든 교과서에 수록되어 교육 아닌 세뇌로 인해 모든 중국인들은 우리 한국이 태생부터 중국의 속국이었다고 여기게 된 것입니다. 단군조선이 지워지면서 부여 역시 한의 지방 민족정권이었다고 치부하는데 고조선과 부여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이전부터 제시되었던 것입니다.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_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②편

 

1-5.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하는 한국학계 자체가 쓰레기 집단이다

 

반면 한국학계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기자조선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중국은 동북공정을 통해 단군신화를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단군조선의 실체를 부정하고 기자에 의해 건국된 기자조선을 고조선 의 시작이라고 보는데 결국 한국사는 고대 중국인이 세운 지방 정권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중국과의 종속관계는 고구려,발해로 이어진다고 보는 것입니다.특히 중국 동북공정에서는 단군 신화가 고조선 시기의 산물이 아니라 고려시대에 민족의식을 고양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았으며 단군신화에 나타난 불교적 요소로 볼 때 평양 지역에 불교가 수용된 이후에 처음 만들어졌으며 후대인의 가공을 거쳐 13세기에 이르러 오늘날의 판본 양식으로 형성되었다고 보는 것입니다.단군 신화의 내용 중에서 왕검이란 이름은 중국식 성명이며, 풍백,우사,운사는 중국식 신선명이며 중국 고사에 보이는 산 지명과 부인도 중국식 용어이며 중국식 간지로 연대를 표기한 것은 단군신화가 중국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며 신화적 소재를 분석하여 단군 신화가 후대에 조작되었다고 보았으며 한중 의학교류를 고려할 때 쑥과 마늘의 조합이 형성된 시기는 중국 의학에서 그것이 조립된 것이 육조 시기 이후에 가능하기 때문에 단군 신화에서 쑥과 마늘의 요소는 4세기 이후에 들어갔다고 주장합니다.

 

또 천부인 3개는 삼신기가 아니라 불교적 부인으로 불교 수용 이후에 추가된 요소라고 보기도 합니다.이처럼 단군신화의 불교 및 도교적 요소를 강조하여 적어도 기원전 4세기 이후에 단군신화가 조작되었다고 주장 합니다.중국의 동북공정은 단군조선을 부정하는 논리로 이어지고 동시에 기자조선의 실재를 인정함으로써 한국사가 기자조선에서 시작한다는 논리를 강조하는 것이며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이 기존의 주류사학자들이기도 합니다.한편 기자조선의 초기 위치에 관해서는 중국학계에서도 여러가지 논란이 있기도 합니다.이상으로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잠든 한민족 고대사 고조선,중국 동북공정과 국내 주류사학자들에 의해 지워진 단군조선 ②편을 마치겠습니다.다음편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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