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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고조선의 역사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였을까 ①

by 캐쉰 2024.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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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수 또는 패강(浿江), 패하(浿河)는 고대 상고사 고조선부터 한국사 문헌 기록에  자주 등장하는 강의 이름으로 패서 지방이나 패강진 등은 여기서 파생된 지명으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조선전(朝鮮傳)에 기록된 고유명사로 열수(列水)와 아울러 일찍이 중국에도 그 이름이 알려진 강이기도 합니다.그 위치에 대하여는 학설이 다양하며, 패수를 어디로 비정하느냐에 따라 고조선과 한 나라의 강역이 달라질 수 있어 매우 중요하기도 합니다. 또한 패수라는 이름은 시기별로 그 지칭 대상이 다른데 대략적으로 한반도 서북지역의 강으로 비정되나, 고조선대에는 주로 압록강 또는 청천강으로 삼국시대 이후로는 대동강이나 예성강 등을 말하기도 하고 고조선 때의 패수는 요하유역으로 볼 수 없고 청천강이나 압록강으로 봐야한다는게 일반적이다라는게 위키에 비정된 패수 위치에 대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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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패수는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의 국경선이다

1-1.패수가 압록강,청천강이라 주장하는 주류 사학자들

1-2.식민사학자 이병도가 왜곡한 패수의 위치

1-3.패수는 열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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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패수는 고조선과 중국 한나라의 국경선이다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였을까 ①

 

패수가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었다는 것은 사마천이 쓴 사기 조선열전에 명백히 나옵니다. “진나라에 뒤이어 한나라가 서면서 요동고새를 다시 수리하고 패수에 이르러 고조선과 경계를 삼았다”고 밝혀놓았고, 또 고조선이 멸망하기 전해인 기원전 109년 한나라의 사신 섭하가 고조선의 우거왕을 회유하려다가 실패하고 돌아가던 중 자기를 바래주려 나왔던 고조선의 비왕 상을 살해하고 패수를 건너 도망쳐 들어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것은 한나라 초기부터 고조선 말기까지 패수가 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었다는 것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선이었던 패수가 오늘날 어떤 강인가 하는 것은 후조선과 만조선의 강역을 정확하게 밝히는 문제이자, 고조선-한 나라 전쟁의 전쟁터가 어디인가를 좌우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고조선 붕괴이후 설치된 한사군의 위치비정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로부터 패수의 위치 비정문제를 둘러싸고 수많은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역사학자들이 들여다본 패수의 위치로 대동강설, 청천강설, 압록강설, 요하설, 대릉하설, 난하설 등 대동강에서 난하까지 대다수의 큰 강들은 모두 그 후보지에 올라있습니다.패수의 위치를 정확히 비정하려면, 후조선시기 서변(서쪽 경계)의 위치, 진개의 고조선 침공이후 고조선 연의 경계, 만조선 시기의 서변의 위치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1.패수가 압록강,청천강이라 주장하는 주류 사학자들

 

우선 위키에는 패수가 지금의 청천강이나 압록강이라 비정짓고 있는데 고조선은 서기전 24세기에 건국된 이후 중국의 성장과 발전에 따라 서기전 2세기에는 패수라는 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의 한(漢)나라 초기 제후국인 연(燕)나라와 마주하게 되는데 당시 연나라의 위만이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의 서쪽 변경에 망명해 왔다가 반란을 일으켜 위만조선을 세우면서 이 위만의 조선에 대해 기록한 역사서가 사마천의 사기 중 조선열전입니다.조선열전을 통해 패수의 위치를 확인해 보면, 학계에서 위키에다가 패수를 압록강이나 청천강 등 한반도의 강이라는 주장이 명백한 잘못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조선열전에는 중국 연나라의 위만이 동쪽으로 경계인 패수를 건너 고조선에 망명했다고 기록했는데 만약 패수가 일제 식민사학자나 지금 학계의 주장처럼 압록강이나 청천강.대동강 등 한반도의 강이었다면 그 강들이 동에서 서로 흐르기 때문에 위만이 남쪽으로 건넜다고 해야 평양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위만이 조선에 와서 도읍했다는 왕험성(평양)의 위치에 대해 사기의 주석서를 보면 신찬이라는 학자가 패수의 동쪽이라 했으므로 역시 위만이 동쪽의 조선으로 왔다는 사실이 확인됩니다. 그리고 다른 학자들은 왕험성이 요동군이나 창려군의 험독현이라고 주석했으므로 그곳이 만주였음을 알 수 있으며, 왕험성이 지금의 평양이었다는 학계의 주장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사관을 추종한 잘못되고 왜곡된 역사관임을 확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또한 한(漢) 무제가 서기전 109년 위만조선의 우거왕을 칠 때 수군대장 양복이 ‘제(齊)나라를 따라 발해에 떠서(從齊浮渤海)’ 열구라는 곳에 상륙작전을 폈다고 하는데 이에 따르면 지금 중국 산동성 해안을 따라 안 쪽의 발해만으로 들어가 톈진 부근에 상륙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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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식민사학자 이병도가 왜곡한 패수의 위치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였을까 ①

 

그런데 이병도는 일제 강점기에 쓴 패수고에서 이 구절의 발해 다음에 괄호 속에 황해라고 써넣어 사료를 조작했습니다. 발해와 황해는 별개의 바다인데 같은 바다로 만들어, 양복이 황해를 건너 대동강 입구의 열구(列口)로 왔다는 것이며 대동강이 열수(列水)라는 식민사학자 이마니시 류(今西龍)의 설을 추종하여 그 입구인 대동강 하구가 열구라는 허위 주장을 한 것입니다.

 

열수의 북쪽에는 열양이라는 지명이 있는데, 산해경을 보면 이 열양이 중국 연나라의 땅이라 했으며 그 동쪽에 조선이 있다고 했는데 즉 연나라의 위만이 동쪽으로 조선에 왔다는 사기의 조선열전 기록처럼, 이 기록도 역시 연의 동쪽이 조선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만약 이병도의 주장처럼 열수가 지금의 대동강이라면 그 북쪽의 열양은 연나라가 되는데, 그곳은 평양과 거의 같은 곳으로 또 조선이 되어야 하므로 모순이 된다는 것입니다.그러므로 연나라의 열양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으며, 그 동쪽의 조선 또한 한반도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패수에 대한 기본 사료인 사기의 조선열전에는 패수 위치를 보하이(발해·渤海) 연안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이를 더욱 확실하게 증거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료를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중 한서의 지리지 중 낙랑군 조를 보면 25개 속현의 이름과 각 현에 대한 간략한 기술이 있으나 정확한 위치를 찾기 어렵습니다.게다가 낙랑군을 흐르는 패수,대수,열수가 서쪽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어 이 강들이 한반도의 강인 것처럼 조작했는데 이 강들은 한반도에 있을 수 없음은 이미 밝혀졌습니다.그런데 한서의 지리지에 동북쪽의 유주(幽州)와 북쪽의 병주(幷州)에 속한 15개 군들을 보면 군 안에 도위를 따로 두어 군의 일부를 다스리게 했는데 그중 낙랑군을 제외한 8군은 모두 동부·서부의 두 도위를 두었으나 유독 낙랑군에는 동부와 남부도위의 둘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15개 군 중 왜 낙랑에만 남부도위가 있는 이유는 바로 군의 관할 지역이 특수하게 ‘「’ 형태여서 동부와 남부에 보조할 도위를 둔 것으로 봐야 할 것입니다. 낙랑군은 바닷가에 있었으므로 이 형태가 나올 수 있는 곳을 찾자면 톈진을 둘러싼 보하이의 서(북)안 지역 외에는 없습니다. 한반도에서라면 함경남도 해안에 있을 수 있으나 서해안에서는 이런 형태가 나올 수 없으니, 낙랑이 평안도라는 설은 틀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3.패수는 열수와 같다

 

역사학자들이 바라본 패수 논쟁 속 패수의 위치-고조선과 한나라의 국경 경계선 패수는 어디였을까 ①

 

또한 수경 권13의 누수인데, 습수라고도 하는 이 강은 지금의 융딩허(영정하·永定河)로서 베이징을 지나 톈진으로 흘러 바다(보하이)로 들어갑니다. 장안(張晏)은 이 습수와 그 지류인 습여수(선수) 그리고 열수(고하)의 세 강이 합하여 흐르는 곳이 낙랑군 조선현이라고 했습니다. 패수 역시 낙랑군을 흐르는데 수경에는

 

“패수가 낙랑 누방현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임패현을 지나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이 기록에 맞는 강을 찾자면 차오바이신허(조백신하·潮白新河)밖에 없다는 것입니다.그러나 이 강은 낙랑 누방현에서 발원하는 것은 아니고 차오바이허(조백하·潮白河)의 하류의 흐름에 새로운 다른 강줄기를 만들어 붙인 이름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차오바이허이며 또 거슬러 올라가면 상류는 바이허가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이허 상류로부터 차오바이허를 거쳐 옛 물길로 흐르는 전체의 강은 하이허(해하·海河) 또는 구허(고하·沽河)로, 결국 패수는 위의 열수와 같은 강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낙랑은 텐진 해안이고 요동은 그 서북 쪽의 베이징 부근이었으며 한나라의 요동,현도가 베이징 부근임을 수경이 위와 같이 충분히 증거하고 있는데도 주류사학계에서는 지금도 패수를 청천강,압록강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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