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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by 캐쉰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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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 동북아 역사 전쟁 ①편에 이어 ②편애서는 본격적으로 치우천황과 황제헌원의 탁록대전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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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황제 헌원은 진짜 중국의 천자였을까?

1-1.진짜 천자는 치우천황이었고 황제 헌원은 운사였다

1-2.고대사 시조부터 동북공정을 시작한 중국의 역사왜곡

1-3.중국이 시조공정을 통해 얻으려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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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황제 헌원은 진짜 중국의 천자였을까?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황제 헌원씨는 천자(天子)로서 시작은 사마천의 사기 오제본기에서부터이며 또한 중국 한(漢)족의 전신인 화하족의 시조로 추앙받지만 이와 다른 기록들도 존재하는데, 사기의 삼가(三家) 주석인 사기집해에는 응소가 치우는 옛 천자'(蚩尤古天子 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또한 헌원의 직책에 대해 운사라는 기록이 나오는데,

 

昔者黃帝氏以雲紀 故爲雲師而雲名
옛적에 황제씨는 구름으로써 관명을 기록하였다. 고로 백관과 사장을 모두 운자로 이름하였다.

/춘추좌전 소공 17년

 

사기 오제본기에도 헌원의 직책이 운사라고 나오며 또한 상고시대의 기록인 금문을 보면 헌원이 왕위에 올랐다는 내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중국 고대 왕의 계보는 신농으로부터 시작하며

 

신농 열산씨-소호 금천씨-전욱 고양씨-재곡 고신씨-제지 청양씨-제요 도당씨-제순 유우씨-우-백익으로 나옵니다. 또한 진나라의 진시황제나 한나라 태조인 유방이 전쟁 전에 헌원이 아닌 치우에게 제사를 지낸 기록들도 나오는데(어쩌면 치우가 이겼고 황제 헌원이 졌지만 관우처럼 결과적으론 패배한 장군인데도 후대에 추앙받은 케이스일지도 모른다.하지만 그건 먼 미래의 일이고 진시황제나 유방은 그래서 치우에게 제사를 지냈을 것이다.승리를 기원하며)그래서 헌원과 치우에 대해서 다르게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1-1.진짜 천자는 치우천황이었고 황제 헌원은 운사였다

 

한편, 청나라 말기 강유위,고힐강 등의 의고학파에서는 황제 신화를 비롯한 삼황오제의 신화 자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역사성을 부인하고, 전국시대에서 위진남북조시대에 걸쳐 종교적 영향으로 꾸며진 신화 정도로 판정하기도 했는데 일본에서도 시라토리 구라키치, 이치무라 신지로, 이이지마 타다오 등이 황제의 실존을 부정하는 논문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이런 황제가 다시 역사적 실존인물로 규정되고 있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중국 학계가 정부의 개입 아래 한족 중심의 민족주의적인 영향으로 황제 신화를 한족의 국조 설화로 중요시 여기면서, 황제나 치우를 역사적 실존인물로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한 영향이 크며 황제의 저작으로 알려져 있는 황제내경  역시 황제를 저자로 내세워 권위를 얻으려 했을 뿐, 실제 저작은 한나라 시기로 추측되며 황로백서라고도 불리는 황제사경을 비롯한 다른 황제 저작의 서적들 역시 황제를 저자로 내세운 위서로 보고 있습니다.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현재 황제헌원의 무덤이 산시성 옌안 시에 있는데 실제 황제의 무덤이라고 합니다. 물론 전설에서 황제는 등선했다고 전해지므로 이 무덤은 의관총이며 이곳은 중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전국 중점 문물 단위로 지정되었습니다. 분류상 고묘장(古墓葬)의 1호로 천하제일릉이라고도 부릅니다.허난성 링보현에도 황제릉이 존재하는데,황제가 처음 즉위했다고 하는 기원전 2697년을 원년으로 하는 황제기원이 청나라 말기에 사용되기도 했고, 중국에서 더러 비공식적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사실 황제기원은 일본의 황기를 보고 자극받은 중국 지식인들이 창안한 것으로 일본제국 당시 일본은 천황 즉위에 따른 연호를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진무 덴노가 즉위했다고 전해지는 기원전 660년을 원년으로 하는 '진무덴노즉위기원'(神武天皇即位紀元), 통칭 '황기'(皇紀)도 병용했는데, 일본제국에 유학을 온 중국의 지식인들이 이를 보고 '황제기원'을 다시 떠올린 것으로 처음 황제기원을 주장했을 때는 원년을 어느 해로 정할지 사람에 따라 수백 년씩 널뛰기를 했으나 1905년부터 기원전 2697년을 원년으로 하는 것이 널리 퍼졌습니다. 기원전 2697년은 최초의 상원갑자(上元甲子)라고도 전하기 때문에, 옛 중국인들이 상당히 인위적으로 정한 해임을 짐작할 수 있으며 요와 우가 실존했다면 훗날 헌원씨로 불리게 되는 요와 우의 고조부는 황제기원보다 훨씬 수백년 뒤에 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2.고대사 시조부터 동북공정을 시작한 중국의 역사왜곡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하지만 일부에서는 황제헌원도 동이족이며 실체가 없던 하화족(夏華族, 화하족華夏族)의 조상으로 둔갑시켰다고 주장합니다.즉,중국 한족(漢族)을 염제신농과 황제헌원 염황(炎黃)의 자손으로 조작한 시조공정이 그것으로 나카 미치요는 한반도 남부의 가야 지역이 고대 야마토 왜의 식민지였다는 소위 임나일본부설과 삼국사기의 초기기록은 믿을 수 없다는 소위 삼국사기 초기기록 불신론을 주창했으며 또한 중들이 날조한 망령된 이야기라고 주장하며 단군조선의 실존 역사를 부정하고 이른바 단군은 신화다라고 주장한 대표적인 일제 식민사학자입니다.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해방이후 일제 식민사학의 후예들은 단군왕검의 실존성과 고조선의 역사를 부정하고 단군신화를 학계의 정설로 만들었습니다. 식민사학을 계승한 한국 주류 역사학계가 우리의 뿌리 역사와 시조를 부정할 때 중국은 우리 선조인 동이족 혈통을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로 만드는 이른바 시조공정(始祖工程)을 완성하기에 이릅니다.사마천 사기史記를 두고 중국 최고의 역사서,동양 최고의 역사서 혹은 전무후무한 최고의 역사서라고까지 극찬하는데 사마천의 사기는 황제와 제후와 신하와 저명한 특정인 등 인물 중심의 본기와 세가와 열전 및 정치, 경제, 군사, 사회, 문화 등과 제도를 기록한 지와 표 등으로 서술한 기전체(紀傳體) 방식의 역사서입니다. 사마천은 중국사를 오제본기로 시작하고 중국 첫번째 군주로 황제를 지목합니다 사마천은 기전체 방식의 역사서 사기에서 중국 한족(漢族)의 시조가 약 4,700여 년 전 황제헌원이라고 주장하는데 사기오제본기에는 신농씨가 동쪽으로 세력을 넓히다가 중국 한족의 시조인 황제헌원과 싸워 패했고,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이 합작해서 치우천황을 물리쳤다고 나오지만, 사실 황제헌원과 동시대 인물은 염제신농씨가 아니고 8대손인 제유망입니다.사마천은 사기에서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이 맺은 부락연맹은 화하족(하화족)의 주요 구성원이 됐고, 화하족은 다시 한족(漢族)으로 변했다고 주장했는데, 한 마디로 현재의 중국 한족은 모두 염황의 자손이라는 주장입니다.

 

1-3.중국이 시조공정을 통해 얻으려하는 것

 

그러나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의 활동 시기는 500년 이상 차이가 나며 중국은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사마천의 사기를 바탕으로 역사를 조작해 중국 한족의 시조를 창조해냈다는 것입니다. 염제신농씨(BCE 3218 ~ BCE 3078)는 신시 배달국 8세 안부련 환웅천황(BCE 3240~BCE 3078) 때의 인물인 반면 황제헌원(공손헌원, BCE 2692 ~ BCE 2593)은 신시 배달국 14세 자오지천황(치우천황, BCE 2749 ~ BCE 2598) 때의 인물로 염제신농씨의 아버지 소전(小典)씨는 배달국 안부련 환웅천황의 명을 받고 산시성 강수(姜水)에서 군사를 감독했으며 소전씨의 큰아들이 염제신농씨, 둘째 아들이 욱(勖)으로 욱은 공손씨의 조상이 되고 황제헌원은 욱의 10대손입니다.

 

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_동북아 역사 전쟁②편

 

 

염제신농씨와 황제헌원의 조상은 같은데 염제신농씨는 고시씨에서 소전씨로 이어진 적통 후손이며 황제헌원은 고시씨와 소전씨의 후손이지만, 방계 혈통으로 중국에서 염황이제상을 세운 이유는 한족(漢族)이 염황의 자손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인데 사실 중국에서 또 다른 한족의 시조라고 말하는 태호복희씨는 배달국 5세 태우의 환웅천황님의 막내 아들이기도 합니다.황제헌원과 염제신농이 생존했던 시대도 다른데 태호복희씨의 부인인 여와씨, 염제신농씨, 황제헌원, 소호금천, 전욱고양, 제곡고신, 요임금, 순임금 등 삼황오제(三皇五帝) 모두가 동이 배달족으로 중국 정부는 1958년 경제적 고도성장 정책, 이른바 대약진운동때 동이족 출신의 황제헌원과 소호금천 등 인물은 한족(漢族)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덤이 파헤쳐졌고 당시 공자묘는 파묘되지 않았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 때 훼손되기도 합니다.중국은 한족(漢族)의 시조는 염제신농과 황제헌원이라고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는데 중화민족은 모두 염황(炎黃)의 자손이라는 시조공정(始祖工程)을 완성하기 위해 2007년 하남성 정주시 인근에 20년의 공사를 끝내고 미국 자유의 여신상보다 8m나 높은 106m 높이의 거대한 조각상  염황이제상(炎黃二帝像)을 완공하기도 합니다.중국은 황제헌원 뿐 아니라 치우천황도 한족의 조상으로 둔갑시키며 자신들이 동이족이라 부르던 이민족들의 조상까지 중국화시키며 요하문명을 중국의 문명으로 둔갑시키려는 만행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고 있습니다.치우천황과 황제 헌원의 10년 탁록 대전의 승패와 중국 동북공정의 실체적 진실,동북아 역사 전쟁②편을 마치겠습니다.다음편을 기대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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