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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국사의 미스테리

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②편

by 캐쉰 2023. 1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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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①편에 이어 ②편으로 이어서 요하문명과 홍산문화에 대하여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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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요하문명과 홍산문화의 기원과 연대

1-1.용의 기원-요하문명 홍산문화

1-2.요하문명 홍산문화는 언어적으로도 황하문명 지역과는 별개인 독자적 문명

1-3.요하문명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편두(偏頭=褊頭)전통

1-4.요하문명 홍산문화가 수천년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

1-5.요하문명 홍산문화는 한민족의 시원 혹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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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요하문명과 홍산문화의 기원과 연대

 

중국에서는 요하 유역에서 새로운 유적들이 계속 발견됨에 따라 도리이 류조의 처음 발견 당시의 추정보다 연대가 훨씬 오래된 기원전 8000년까지 인상되었으며 홍산 문화에 기원전 8000년경의 신러 문화까지를 포함시켜 요하 문명으로 간주하여 홍산 문화가 황하문명의 원류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고 중국 학자 량쓰용은 중국어족과는 다른 랴오허 지역의 사람들이 남하하여 현 쓰촨성 북부의 중국티베트어족을 지배하고 황하문명을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훙산 문화에서는 수렵, 채집 중심으로 후기에 기초적인 농작생활상도 보이는 등 신석기 시대의 특징을 보여주는데 가축을 사육한 축산도 발달하고 있어 돼지나 양도 길러졌습니다. 한편에서는 수렵이나 채집 등으로 야생 동물을 사냥하거나 야생초를 채집하기도 했습니다.

 

요하문명 홍산문화의 유적,유물로는 발견된 석기는 타제석기,마제석기,세석기 등으로 대부분은 신석기 시대의 농기구이며, 돌보습(石耜), 돌쟁기(石犁), 돌호미(石鋤) 등의 종류가 많습니다.옥들과 용등을 본떠 만든 비취 등의 구슬로부터 현재 중국에 연결되는 문화나 종교의 존재도 볼 수 있다.홍산 문화의 도기는 진흙 홍도 및 협사회도(夾沙灰陶)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빗살무늬 토기가 발견되었고 진흙으로 만들어 붓으로 그림 그린 체도(채문 토기)는 취사나 식사 등에 사용되고, 문양이 새겨진 협사회도는 음식을 담는 곳에 사용되었습니다. 다른 도기에서는 흉상이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는데 홍산 문화에서는 양사오 문화와 같은 채도 문화는 발달하지 않았지만, 룽산 문화와 흑도와 같은 세련된 조형미를 가졌으며 후기 유적에서는 청동으로 만든 환도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1-1.용의 기원-요하문명 홍산문화

 

홍산 문화의 분묘에서는 비취 등의 석재로 동물 등의 형태로 조각한 장식품이 많이 출토되었는데 돼지,호랑이,새 외에도 용을 새긴 것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높은 공예의 수준이 홍산 문화의 큰 특징인데 저룡(猪龍) 또는 옥저룡(玉猪龍)이나 옥웅룡(玉熊龍)등으로 불리는 홍산 문화의 옥용(용을 조각한 구슬)의 조형은 단순하며, 용이 원형으로 된 것이 많지만, 후기로 가면서 반용(盤龍), 문용(紋龍) 등의 구별이 분명해진다는 것입니다. 고고학자 중에는 홍산 문화가 이후 중국에서 시작된 용 숭배의 근원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또한 홍산문화에서 적석총(돌무지무덤)과 옥기가 발견되는 것을 근거로 하여, 홍산문화가 적석총이 다수 발견되는 고조선,고구려,백제,신라 등의 문화의 연원이라는 견해가 나오고 있습니다.

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②편
요하문명 홍산문화에서 출토된 다양한 옥기들

 

 

요하문명 홍산문화 유적에서 발견되는 정교한 옥기 하나를 완성하려면 엄청난 인력과 시간이 필요했을 것을 짐작케 하는데 학자들은 홍산문화 시대에 최소한 몇등급으로 신분이 분화되었다고 주장하며 홍산문화 시대에 옥기를 만드는 장인집단이 따로 존재했었고, 신분이 분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해 묘장 마다 크기가 다르고, 매장 방식이 다른 것도 신분 분화의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여신묘의 한 변이 20~30미터짜리 3층 피라미드식 적석총, 가장 큰 60미터짜리 7층 피라미드식 적석총을 쌓으려면 많은 인원을 필요하므로 중국학계에서는 홍산문화 후기 단계를 초기 국가단계, 초기 문명단계라고 보고 있으며 우하량 제2지점 제단 유적지 안내문에는 ‘약 5500년 전에 이미 국가가 되기 위한 모든 조건을 구비하고 있는 홍산문화유적지’라고 쓰여 있습니다.기존의 역사학의 시각에서 보면 국가단계에 진입한다는 가장 유력한 증거는 문자와 청동기였는데 홍산문화 시대에 문자와 청동기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초기 국가단계라고 주장하는 것은 여러 형태로 있는 다량의 옥기가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이 뉘우허량 유적의 발견이후 청동기가 없어도 국가의 형성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줘 ‘옥기시대’라는 새로운 개념을 만들었습니다.

 

1-2.요하문명 홍산문화는 언어적으로도 황하문명 지역과는 별개인 독자적 문명

 

언어적으로도 요하문명 홍산문화는 중국 황하 문명과 독자적인 별개의 것으로 트랜스유라시아어족 언어의 기원지로 밝혀진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 요하문명(遼河文明)지역입니다. 결국, 9000년 전 서요하 유역의 기장 농업 지역이란 바로 요하문명 지역이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요하문명의 가장 이른 신석기시대 고고학문화인 소하서문화(小河西文化: BC 7000 - BC 6500)의 시작이 바로 9000년 전입니다.또한 이 요하문명 지역에서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黍]이 출토됩니다.구체적으로 요하문명의 흥륭와문화(興隆洼文化: BC 6200 - BC 5200)에 속한 흥륭구(興隆溝)유적에서 발견된 8000년 전의 세계 최초의 재배종 기장(黍: 1,460알 중 1,400알, 96%)과 조(粟: 1,460알 중 60알, 4%)는 이미 2012년에 유엔(UN) 식량농업기구(FAO)에서 세계 중요 농업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북경 서쪽 동호림(東胡林)유적(BC 9000-BC 7000)에서 발견된 기장은 시기는 앞서지만, 재배종이 아니라 아직 야생종에 가까운 순화 과정에 있는 것이어서 지정되지 못했습니다.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언어가 4000년 전을 기점으로 중앙아시아를 거쳐 들어온 유목-목축민이 전파했다는 기존의 유목민 가설을 비판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어서야 서요하 지역과 중앙아시아-서유라시아의 유전 계통이 섞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곧, 유목-목축민들이 서요하 지역으로 들어온 것은 청동기시대 후기에나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 대안으로 9000년 전 서요하 지역의 농경민에게서 기원하여 확산되었다는 농경민 가설을 새롭게 제시한 것입니다.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의 기원지일 뿐만이 아니라

 

(1) 9000년 전 최초의 빗살무늬토기,

(2) 8000년 전 최초의 재배종 기장과 조

(3) 8000년 전 최초의 옥결(玉玦: 옥 귀고리)

(4) 8000년 전 최초의 적석묘,

(5) 7000년 전 최초의 복골(卜骨: 점을 친 뼈)

(6) 7000년 전 최초의 흑도(黑陶),

(7) 5500년 전 최초의 계단식 적석총

(8) 4300년 전 최초의 ‘치(雉)를 갖춘 석성(石城)_고구려의 치를 갖춘 석성과 동일

(9) 3000년 전 최초의 비파형동검 등의 기원지이기도 합니다.

 

이 가운데, (1), (4), (6), (7), (8), (9)는 요하문명과 한반도에서 모두 발견되는데, 황하문명 중심 지역에서는 발견되지 않는 것들입니다.요하문명은 전형적인 북방문화 계통으로 황하문명과는 확실하게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네이처 논문에서도 황하문명 지역은 ‘중국-티베트어족 언어의 기원지이고, 요하문명 지역은 트랜스유라시이어족 언어의 기원지라고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곧 황하문명과 요하문명은 이질적이고 독자적인 문명권이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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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②편

 

1-3.요하문명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편두(偏頭=褊頭)전통

 

홍산문화 시기에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편두(偏頭=褊頭)전통도 주목해야 합니다.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 동이전(東夷傳)에는 진한(辰韓) 사람들은 “아이가 출생하면 곧 돌로 머리를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려 했기 때문에 지금 진한 사람의 머리는 모두 납작하다(兒生 便以石壓其頭 欲其褊 今辰韓人皆褊頭)”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야 시대 김해시 예안리고분(禮安里古墳)유적에서도 10점의 편두 두개골이 확인되었는데 이후에는 경북 경산시의 임당동고분군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확인되었습니다. 경상 남북도 지역에 편두 전통이 확대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진한이나 변한뿐만이 아니라 흉노, 가야, 신라, 일본 등의 편두 전통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그런데 홍산문화 후기의 대표적 유적지인 우하량(牛河梁)유적에서 발견된 남녀 두개골 17개 가운데, 76.47%에 달하는 13개가 편두임이 밝혀졌습니다. 남녀가 모두 편두를 했었고, 홍산인들에게 편두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최근 길림성 대안시(大安市) 후투목알(後套木嘎, 허우타오무가)유적의 발굴(2011-2015) 과정에서 편두가 이 지역에서 12000년 전에 기원했다는 것이 새롭게 밝혀졌습니다. 이 유적에서는 11점의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고 12000년 전부터 5000년 전까지 7000년이 넘게 지속되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편두 전통은

 

(1) 요하문명 지역의 동북쪽 끝인 후투목알유적에서 12000년 전에 기원하여 7000년 동안 지속되었고

(2) 홍산문화 후기인 5500-5000년 전에는 보편화되었고

(3) 이후 서쪽으로는 ‘몽골 초원→유라시아 초원→유럽으로

(4) 동쪽으로는 베링 해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으로

(5) 동남쪽으로는 ‘한반도→일본’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12000년 전 후투목알유적의 편두 모습은 우리나라 예안리에서 발굴된 것과 마찬가지로 편두가 뚜렷합니다. 홍산문화의 편두 두개골은 그렇게 뚜렷하지 않지만 인공적인 변형이 분명하게 확인되었고 발굴보고서에서도 학자들이 편두로 판정한 것입니다. 결국 편두 전통도 요하문명 지역에서 기원해서 사방으로 확산된 것입니다.

고대 한반도의 원류를 찾아서,중국의 요하공정과 동북공정에 지워진 한민족의 실제 역사지도 ②편

 

1-4.요하문명 홍산문화가 수천년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진 이유?

 

서요하 지역은 요하문명이 꽃피는 시기에는 한반도 중부 지역과 기후 조건이 비슷했고 농경을 하면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5000년 전을 기점으로 기온이 급강하하고, 건조한 지역으로 바뀌기 시작합니다. 이런 건조화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서요하 지역 요하문명의 한 가운데는 동서 약 500km 남북 약 200km의 거대한 카라친 사막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석기 말부터 이런 건조화-초원화-사막화가 진행되면서, 인구 밀도도 낮아지고 사람들이 살지 않게 되면서 점차 잊혀지게 된 것입니다.어쩌면 현재 발굴되고 발견된 유적들보다 거대한 사막 아래에 더 놀랍고 거대한 유적들이 묻혀있을 지도 모릅니다.네이처 논문은 한국어의 기원에 관한 새로운 사실뿐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역사-문화 연구의 방향에 매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첫째, 동북아시아 상고-고대사, 문화사, 종교사 등등의 연구에서도 그 출발은 요하문명 지역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둘째, 요하문명 지역은 언어적으로도 황하문명 지역과는 별개의 독자적 문명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고, 요하문명이 중국보다는 한반도와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셋째, 결국 이제는 요하문명을 모르고서는 동북아시아의 언어, 역사, 문화, 철학, 종교 등을 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5.요하문명 홍산문화는 한민족의 시원 혹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요하문명 홍산문화는 분명히 우리 민족과 같은 결을 지닌 문명이며 우리 민족의 시초라고 여겨지는 고조선의 뿌리라는 것입니다.아이의 탄생에 부모가 있듯 모든 문명에게도 뿌리는 존재합니다,우리 민족은 분명 중국과는 다른 뿌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동안은 마치 중국 문화의 아류이자 사생아처럼 행동했으며 중화사상을 아버지처럼 모시며 살아왔다는 것입니다.하지만 요하문명 홍산문화에서 보듯이 분명히 우리 민족은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인 문명과 문화를 영유해 왔다는 것입니다.일제 잔재의 식민사관은 120여년전부터 진행되어 현재 모든 역사 교과서를 그들 입맛대로 고쳐왔으며 중국의 동북공정은 우리 상고사-단순히 고구려 뿐 아니라 고조선 그리고 고조선의 뿌리인 요하문명 홍산문화까지 중국 문화라고 주장-를 자신들 것으로 만들어 결국 요하 일대와 만주 그리고 현재 북한 일대까지 중국의 자국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음모이기 때문에 상고사를 잃어버리면 결국에는 한반도까지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그렇게 고구려-발해,신라-고려-조선으로 이어지는 대륙의 역사를 한반도로 몰아넣으며 소정의 목표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그렇게 동북공정의 목표를 달성한 중국은 이제는 문화공정까지 단행하며 한국의 모든 문화는 결국 중국에서 시작되었다는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많은 한국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의 문화가 중국에서 왔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기도 하지만 진짜 우리 민족의 고유 문화는 중국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요하 문명 홍산 문화의 뒤를 이은 고조선에서 나온 것이며 우리 전통의 문화이자 북방 민족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이 사실은 중국 역사학자들도 인정한 것이지만 어느 시점부터 정치화된 중국 학자들은 요하문명 홍산문화가 동이족의 문명이자 문화라고 했던 주장을 철회하고 중국문명이라 주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그 이유는 수,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한 이유이기도 하며 일본이 고조선과 단군을 신화나 전설로 만든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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